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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사전적인 정의는 세상일을 피해 숨는 '고립'이지만 저자에게 은둔은 나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는 '몰입'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은둔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는 힘을 키울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가 좋았던 책, 은둔의 즐거움을 추천합니다.  책 속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책추천] 은둔의 즐거움 (나를 성장시키는 혼자 웅크리는 시간의 힘)

 

 

1. 너무 앞만 보고 달리다 넘어질 때 


  나도 모르는 실수를 하는 날이면 

  더 이상 나를 다그치지 않고 내가 너무 쉬지 않고 달려왔구나,

  나를 위로하며 잠시 사라지는 삭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런 시간이 존재했기에 나는 지금껏 넘어지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삭의 시간은 달이 내게 선물해준 삶의 깨달음이었고

  나는 그 소중한 시간을 '은둔'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2. 인생의 겨울을 지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은둔의 처세는 내가 잘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통해 은둔하는 소은(小隠),

  또 다른 기회를 기다리며 위기를 인내하는 중은(中隠), 

  그리고 불행을 통해 삶의 성찰을 이루는 대은(大隠)으로 크게 구분해 설명할 수 있다. 


  '소은' 이라 함은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작은 은둔'을 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쉬게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주는 것이다. 
   
   ......


  '중은' 또 다른 기회를 만들기 위한 생업 중의 은둔을 말한다. 

  현실을 위한 생업을 이어나가면서 한편으로는 또 다른 미래를 맞이할 능력을 키워가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하루하루 고비를 넘기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래의 꿈을 위해 켜켜이 쌓여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 이미 중은의 시간을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


  마지막 방법인 '대은'은 겨울의 추위를 피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며

  내가 바라는 원해한 뜻을 이루는 '깊은 은둔'의 삶을 말한다. 

  불가에서는 이를 '입전수수'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입전수수란 가게에 들어와 손을 내민다는 뜻이다. 

  자세히 풀이하자면, 가게로 상징되는 속세에 들어와 사람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르며 어울린다는 의미다. 

  언뜻 경건해야 할 불자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것 같지만, 입전 수수의 마음에는

  수행자가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갈 때 진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활인'의 뜻이 담겨 있다. 

  대신 수행자는 사람들과 함께 뒤썪이면서도 자신의 맑은 마음,

  이루고자 하는 뜻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체득하고 있어야 한다. 

  

 

- 어렵고 힘든 삶 속에서도 우리는 '소은'의 여유를 즐기고, '중은'의 노력 속에 희망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은' 의 성찰을 실천할 수 있는 깊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럴 수 있을 때 불행의 파고로 출렁이는 인생의 겨울을 무사히 건너게 될 것이다. 

 

 

 

3. 은둔과 고립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은둔과 고립의 확실한 차이는 다음 날 느끼는 불안함에 있다. 

  은둔을 하고 난 다음 회사에 출근할 때는 그래도 다시 해볼 만하다는 긍정적인 의욕이 생긴다. 

  머리는 명료해지고 마음은 따뜻해지며 몸은 가벼워진다.

  충분한 충전을 통해 몸과 마음의 탄력성이 회복된 것이다. 

  하지만 어제의 휴식이 나를 고립시킨 것이었다면 회사에 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괴롭고 불안해진다. 

  머리는 무겁고 마음은 어두워지며 몸은 물에 젖은 듯 찌뿌둥하다.  

  고립의 마음이 면역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언제나 무기력한 고립에 이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짧은 휴식에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될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명확한 목적과 이유가 있을 때 휴식은 나를 위한 은둔의 시간이 될 수 있다. 

 

- 내가 잘하고 즐거워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나를 쉬게 하는 '충전'의 시간, 자유로운 상상으로 아픈 마음을 보듬어주는 '치유'의 시간, 낯선 것을 경험하면서 익숨함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상을 깨달아가는 '성장'의 시간이기도 하다. 

 

 

 

4. 리추얼이 일상의 품격을 높인다.


  어떤 일을 반복하면 그 일이 특별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 일으킬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식사 전에 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경건한 마음이 들거나, 

  매일 아침 출근길에 한강을 바라보며 포근함을 느끼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식의 정서적 반응을 불러오는 일상의 반복적인 행동을 '리추얼(ritual)'이라고 한다.


  리추얼은 습관처럼 의미 없이 반복되는 버릇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며 되풀이 되는 행동을 말한다. 

  그렇게 특정한 정서적 반응을 동반하기에 때로는 특정 정서를 유발하기 위해 의도적인 리추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랬을 때 리추얼은 일상을 변화시키는 강한 힘을 만들어준다. 


 

 -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밖에서는 직장인이나 사업가였다가, 집에 오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되고 아들과 딸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바뀔 때마다 적당한 완충 장치 없이, 심지어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인식 없이 막무가내로 다른 역할에 뛰어들 때가 많다. 아무런 준비 없이 차디찬 계곡물에 뛰어드는 조급한 어린아이처럼 성급하게 역할을 바꾸는 것이다.......

 

이럴 때 10분의 은둔을 통해 역할을 바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가져야 한다. 그곳이 자동차 안이어도 좋고 짧은 산책이어도 좋다. 혼자 않아 있는 카페나 가볍게 음료 한잔을 마시는 편의점도 좋은 장소가 될 수 있다. 은둔의 공간이라고 해서 모두와 동떨어진 외롭고 쓸쓸한 곳만을 떠올린 필요는 없다. 주의의 시선에서 벗어나 집중하고 나만을 생각할 수 있는 의식의 집중이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든 은둔의 공간이 될 수 있다.  

 

 

 

5. 그의 슬픔과 기쁨 가까이에 


  우리가 건너야 할 고독의 사막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이 헌신의 마음이다.

  그렇기에 고독을 극복할 수 있는 고독의 상대어는 홀로 외롭지 않은 상태도, 

  혼자지만 외롭지 않은 상태도 아닌 '헌신'이어야 한다. 

  헌신은 고독을 부정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다.

  헌신은 고독을 피하거나 고독 속에 즐거움을 느끼는 법이 아니라 지금 겪고 있는 고독보다 더 '좋은 고독'을 얻는 법이다. 

  좋은 고독이란  때론 억지로 만들어낸 가벼운 기쁨보다 훨씬 더 나를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더 좋은 고독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고독의 사막을 건널 수 있게 된다

 

- 헌신은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배려하고 희생하며 공감하는 것을 말한다. 나의 슬픔과 즐거움을 넘어 그의 슬픔과 즐거움에 공감할 수 있을 때 나의 것을 베풀고 희생할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어놓아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고 해서 마음마저 혼자 둘 필요는 없다. 혼자 있는 시간에도 마음은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해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 헌신의 마음이 자라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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